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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Marriage

임산부 남편 행동강령 #1 진심으로 기뻐하라

by 내피셜매거진 2020. 1. 14.

"여보, 나 임신한 것 같아"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이 선명했다.

이제 막 깨서 졸린눈을 열심히 비비고 꿈뻑꿈뻑 다시 봤다. 

두 줄이었다. 

 

내가 고자가 아니라니


지금껏 살아오면서 들었던 훈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논산훈련소에서 5주간의 기초 군사훈련과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자대로 배치받은 첫날 담당 선임이 해준 말이다. 

"연극 좋아하냐? 연기 잘해?" 

이게 뭔 소리지 갑자기?

"넌 이제 2년 동안 연기를 하는거야, 군인 역할이야. 군인 역할이 너의 평소 성격이나 생각과 잘 맞으면 편할테고 그렇지 않으면 불편하겠지만 연기니까 연습해서 하면 할 수 있어. 군인 연기 잘하면 군생활 잘하는거고 연기 못하면 그저 그렇게 지내다 가는 거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어차피 인생은 끊임없이 맡은 역할을 연기하는 거야"

그 선임이 연기 전공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그때 들었던 그의 연기론은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군인 연기를 제법 잘해서 군대에서 훌륭한 군인이라고 상도 많이 받았다. 고마워요 김병장님.

그 이후로도 아빠엄마의 믿음직한 아들 역할, 동생의 든든한 형 역할, 직장에서 임원을 꿈꾸는 일머리 좋은 사원 역할, 등등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고 있다.

 

연기론 전에는 내 감정상태나 기분을 잘 숨기지 못하고 소위말하는 척을 잘 못했었는데 연기론 트레이닝 이후엔 어떤 척을 하는데 있어 제법 티나지 않게 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조금이나마 내 기분과 심리 상태를 대외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점이 연기론의 큰 장점이다.

살다 보면 척 해야 하는 순간들이 생각보다 많다.

연기론을 트레이닝하면 분명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여보, 나 임신한 것 같아"

 

정말 간절히 기다렸던 임신이라면 그 순간 진심으로 기쁠테니 연기는 따로 필요하지 않다.

다만, 그런게 아니라면 임신은 어쩌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나를 닮은 새 생명이라니 기쁘지 아니한가?

한편으론 기쁜데 한편으론 걱정스럽고 두렵고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뭐 그런 오만가지 생각이 들 수 있다.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

남자는 대부분 당황한다.

실감이 안나서 그럴 수 있다. 

 

그럴 땐 이렇게 행동하면 된다.

침착하게 연기를 하자. 

사랑하는 아내가 임신한 사실이 너무나도 기쁜 남편 역할에 몰입해보자.

절대로 당황스럽다거나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면 안된다. 그러면 NG


1. 진짜? 정말? 에이 장난치지 말고. 일단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실인지 확인한다.

 

2. 사실임을 확인하면 와락 끌어안아라. 약 30초 정도. 이때 다음 대사를 생각하며 감정을 끌어올린다.

 

3. 입꼬리는 올리고 눈물을 글썽이며(평소 연습이 필요하다) 그녀의 손을 잡고 4번의 대사를 읊어라. 격하게.

 

4. "진심으로 기쁘다ㅠ 정말 축하해, 너무 고마워ㅠ 내가 앞으로 정말 잘할테니 절대 두려워하지 마"

 

5. 꽃다발을 사서 그녀에게 안겨주고 두줄이 선명한 임신테스트기를 들고 함께 셀카를 찍어라. 기쁜 마음으로. 


인생은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옷 여밈이 순조로운 법. 

미리미리 대사 외우고 트레이닝해두자.

 

진심으로 기뻐하라


 

아내가 임신했어요!!

임산부 남편 행동강령!

여자는 임신테스트기에 두줄이 뜨는 순간부터 기분도 시시때때로 변하고 몸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남편도 변해야 산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채 1년이 안되는 이 기간이 어쩌면 당신의 평생을 좌우한다.

아내한테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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